디지털에 대한 두려움
요새는 스마트폰이 대세인지라 이걸 사용하면서 친구들에게도 구입을 권유하고 있다. 과거 휴대폰의 기능에 비하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여 하늘과 땅 차이가 있지만 구형에 길들여진 친구들은 선뜻 기기를 바꾸지 못한다.
가정의 기계식 전화기에 익숙하다가 디지털 기기인 휴대폰이 출시되어 이를 소지할 때만 해도 그 편리함과 우수성에 놀랐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스마트폰이 출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발전 속도가 어찌 빠른지 잠시 주의를 게을리 하면 다양한 서비스를 놓치게 된다. 디지털 시대가 완연하다.
휴대폰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다. 오디오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소위 전축이라고 해서, 앰프, 스피커, 턴테이블, 다이얼식 튜너를 연결하여 LP레코드를 듣고, 방송을 청취하곤 했었다. 지금도 오디오 마니아들은 아날로그 방식의 음악 감상을 고집하고 있고 그 음향의 현장감과 친근함에 취하고 있다. 오늘날의 오디오는 완전 디지털 일색이다. 턴테이블은 DVD/CD/불루레이 플레이어로 대체되고 앰프는 홈시어터로, LP판은 DVD/CD/불루레이 음반으로 바뀌었으며 튜너는 전자식으로 교체되었다. 음악 감상 마니아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음향이 7채널이라 박진감은 있으나 현장감과 친근함이 덜하고 너무 기계적이어서 실제 음향 냄새가 풍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휴대폰과 오디오 기기를 예로 들었지만 세상사는 방법이 완연히 달라졌다. 그야말로 아날로그는 사라지고 디지털로 변모하고 말았다. 아날로그(analog)란 우리가 거시적인 자연에서 얻는 신호이다. 이를테면, 빛의 밝기, 소리의 높낮이나 크기, 바람의 세기 등이다. 그러나 미시적인 자연 현상은 디지털(digital)의 개념에 가깝다. 디지털이란 자료나 정보 따위를 이진수와 같은 유한 자릿수의 수열로 나타내는 일을 뜻한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신경은 신경 다발이 몇 개 자극 되는지에 따라 디지털신호로 바뀐다. 컴퓨터에서는 모든 자료를 디지털 방식으로 처리한다. 문서와 통계 자료뿐만이 아니라 음성 자료도, 영상 자료도 디지털 방식으로 처리한다. 디지털 자료는 복제, 삭제, 편집이 간편하며, 복사물과 원본의 차이가 없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제 나이가 좀 든 분들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그들은 다분히 아날로그 세대이다. 자연 그대로 전해지는 게 편리하고, 직접 발로 뛰면서 과제를 해결하는 데서 보람을 찾는 분들이 많다. 그러니까 손으로 만들고, 칼로 깎고 다듬고, 손수 그려 붙이고, 상대방과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정을 느낀다. 태엽을 감는 시계, 두발 자전거가 더 정겹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휴대전화가 도입되었고, 요새는 디지털 TV 시청시대가 되어 모뎀을 달게 된다. 모든 가전제품이 디지털 제품으로 교체되어 조작이 어렵게 되었다. 구형 폰에 익숙하여 스마트폰을 만나면 우선 겁부터 난다. 지금 쓰고 있는 휴대폰도 아무 어려움이 없는데, 무슨 스마트폰이냐고 항변하기도 한다. 그래도 마음 한켠에는 이젠 폰 기기를 바꿀 때가 되었다는 것을 감지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연결해주는 모뎀이 필요하다. 가교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저기가 가진 지식을 사장하지 않고 남에게 나누어주는 일도 필요하며, 많이 알고 많이 가지고만 있지 말고 적은 것이라도 나누며 산다면 유용한 일이다.
컴퓨터를 꺼리는 분들에게 ‘컴퓨터는 내 친구’라는 주제로 노인들을 선도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노년에 건강을 챙기고 하루하루 생명을 연장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노년을 여생으로 보지 말고 본생으로 살아가자며, 잘 짜인 노인대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 프로그램의 일부로서 본인이 컴퓨터를 보급하면서 각 읍면 노인대학을 방문하여 초보자 컴퓨터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모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는 컴퓨터를 재조립하여 노인 회관에 기증하고 컴퓨터에 관심 있는 노인들에게 자비로 이를 구입하여 나누어주는 사업을 하면서 인생의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이 시대의 모뎀인 셈이다.
이 시대에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이어주는 모뎀이 필요하다. 그 모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아날로그 TV를 디지털 TV로 바꾸면 집안의 누구인가가 기계 조작방법을 교육한다. 한두 번 조작해 보면 그 편리함을 안다. 그리고 디지털 화면의 선명함에 놀란다.
우리는 가끔 낡은 아날로그에 손이 간다. 일종의 아날로그 향수라고나 할까. 정보기술(IT) 전문가인 류한석 기술문화연구소장은 ‘아날로그 마니아’다. 그는 유명 오디오 브랜드인 매킨토시에서 출시한 아이패드용 애플리케이션 ‘AP1 오디오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다. 이 앱은 성량에 따라 바늘이 움직이면서 출력 레벨을 나타내주는 단순한 구조지만 고풍스러운 ‘전축’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류 소장은 “LP나 종이책 같은 아날로그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스마트 기기가 넘쳐나는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을 담은 앱ㆍ서비스들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벤처기업인 리얼폰트의 장경호 대표는 최근 자신이 직접 쓴 손글씨체를 스마트폰 메신저, PC 문서작성 프로그램에서 쓸 수 있도록 해주는 ‘내글씨 2.0’ 서비스를 선보였다. “자신만의 감성과 개성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손글씨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 같은 서비스를 선보이게 됐다”는 게 장 대표의 설명이다. 손글씨에 담긴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수요’는 급증했다. 어느 통신사는 이용자가 자신의 글과 사진 등으로 스마트폰에서 자신만의 잡지를 만들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놓았다. 스마트 시대에 소비자들이 아날로그를 찾는 이유에 대해 계속 쏟아져 나오는 디지털 기기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진 사용자들에게 아날로그적 감성은 안도감을 준다는 것이다. 최신 스마트 기기를 통해 어떤 아날로그 서비스를 제공할지, 어떻게 아날로그 느낌을 살리면서도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할지부터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식 감성. 아날로그 세대와 디지털 세대. 윗세대로부터 전해지는 전통이나 관습을 중시하는 종적인 깊이에 기준한 아날로그 세대. 사회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변화를 이끄는, 횡적인 넓이에 기준한 디지털 세대. 구식이고 기계적이고 편리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아날로그가 위축되고 있고, 능률적이고 신속하고 정확성을 지닌 디지털은 비인간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으나 양자는 상호 보완점을 찾아야 한다. 아날로그의 따뜻함에 디지털의 정확함과 속도감이 어우러진 '디지로그'는 어떤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상호 조화.
지금이야말로 노인들은 디지털에 대한 두려움 떨쳐내야 할 때다.
(2012.9.15.)
|
'心理放談'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세로토닌 쏟아지던 날 (0) | 2012.10.01 |
---|---|
다시 오늘을 살았던 지셴린의 노년기 (0) | 2012.09.17 |
[스크랩] 수(壽)가 늘어서 (0) | 2012.08.29 |
[스크랩] 심리적 관성 (0) | 2012.08.15 |
[스크랩] 징크스 (0) | 2012.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