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의 수업을 위하여
선생님의 선생님다운 모습이 가장 또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한 시간 한 시간의 지도 시간입니다. 물론 교과를 지도하는 일 말고도 선생님이 하시는 일들은 수다하게 많을 수 있지만 이러한 일들은 모두 부차적인 일들인 것입니다. 오직 한 시간 한 시간의 수업이 선생님의 삶의 모습이며 그 알맹이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많은 선생님들은 한 시간 한 시간의 수업을 위하여 온갖 주의를 다 기울이고 신명을 바치는 것입니다.
다음 주의 교과지도계획을 마련하지 않은 채, 주말 연휴를 즐긴 선생님을 가정해 봅시다.
월요일이 되어 학생들을 대면합니다. 교과지도의 목표를 즉석에서 설정해 보지만 마땅하지 못합니다. 지도의 순서를 설정해 보지만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지도안도 교육 자료도 준비되지 못했습니다. 서둘다 보니 수업시간은 마구 지나갑니다. 마지못해 교과서를 읽혀 봅니다. 학생이 읽어나가는 내용에 좇아 교재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지도핵심을 찾아보지만 아무래도 자신감이 없습니다. 자신감이 없는 선생님을 보는 학생들은 불안하게 됩니다.
그러나 교과 지도계획을 미리 준비한 선생님은 그러하지 않습니다.
잘 작성된 지도안에 따라 시계를 보아 가면서 미리 수업을 예행연습해 봅니다. 수업 시작 시간에 어떤 말로 분위기를 조성할까. 이미 학습한 내용과 오늘 학습할 내용을 어떻게 다리를 놓아줄까. 어떤 예화를 통하여 학습동기를 높일까.
그리고는 녹음기를 준비합니다. 어떤 선생님은 캠코더를 준비합니다. 자신의 수업 예행연습 상황을 기록해 보려는 것입니다. 다시 틀어보고 다시 들어보면서 수정해 나갑니다.
모든 선생님들이 이와 같은 정성을 다 보인다는 말은 아닙니다. 참으로 고상하고 거룩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이상적인 선생님을 그려본 것뿐입니다.
특별히 야망을 품고 교직에 발을 들여놓은 선생님들 가운데는 실제로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는 분이 많다는 것을 저도 잘 보아 왔습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교실에 남아 환경을 정리하거나 밤을 새워가면서 교재연구를 하고 정성껏 교재교구를 준비하고 있는 선생님들은, 자신의 수업을 수 없이 반성하고 수업계획을 세련되게 작성하면서 마음속 깊이 자신의 삶에 충족감을 깊게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한 시간의 수업을 위하여 선생님들이 준비하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안입니다. 어떤 분은 지도안이야말로 선생님의 삶이 통합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만큼 선생님에게는 필수적인 것이며 그것이 교사의 삶의 모습이라는 얘기입니다.
지도안의 작성은 지도하는 일에 앞서 행해지는 일이며 수업에 직접적으로 활용되는 문서입니다. 요새는 지도안을 ‘교수-학습 과정안’ 또는 ‘일일 교육계획안’ 등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지도안은 선생님의 경력이나 능숙성, 교재의 특성 또는 당시의 형편에 따라 그 필요성의 정도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불필요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주말을 즐겁게 보내버린 선생님의 경우처럼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하여 지도안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 있다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그것이 부득이한 상황이어야지 일부러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면 아니 됩니다.
다만 경력이 높으신 선생님들은 상세한 지도안(세안)을 쓰지 않고 간략한 지도안(약안)을 쓰셔도 무방할 것입니다.
선생님들이 지도안을 작성하시는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지도의 체계를 가다듬기 위하여 작성합니다.
지도안에는 수업목표, 지도내용과 교사와 학생의 활동이 포함됩니다. 따라서 목표를 구체화하고 지도의 계통을 세우는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앞에 지도한 내용과 뒤에 배울 것을 맺어지게 하여 사고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하면서 지도 요소를 빠뜨리지 않게 됩니다.
둘째, 자신의 수업을 되새겨 보기 위하여 작성합니다.
선생님이 경력이 쌓이면서 수업의 능숙도는 향상되어 갑니다. 그러려면 자신의 수업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검토하고 반성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지도안은 자신이 지도한 과정이나 행적이 누적적으로 쌓이는 문서이기 때문에 단편적인 메모와는 다릅니다.
매일 수업이 끝나면 지도안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수업을 반성하고 첨삭을 해 둡니다. 그러면 다음 해에 더 나은 지도안을 쓸 수 있는 자료가 되고 시간과 정력을 아껴줍니다. 지도안을 모아둔다면 그 자체가 선생님의 삶의 증거이며 소중한 문헌이 됩니다.
셋째, 안정감을 가지고 자신 있게 지도하기 위하여 작성합니다.
지도안을 준비하지 않고 교실에 들어가는 선생님이라면 틀림없이 교실을 나올 때는 허전해지기 마련입니다. 이는 선생님의 불행만이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안정된 마음으로 당당하고 자신 있게 수업을 하려면 지도안이 필요합니다.
넷째, 교사 자신이 지도할 내용을 재학습하기 위하여 작성합니다.
선생님들은 평생 학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입니다. 어설프게 알아서는 자신 있고 확실하게 가르칠 수 없으니까요. 학습하지 않은 선생님이 학습을 돕는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지도안을 작성하는 가운데 애매하거나 확실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은 지식에 대하여 재학습하게 됩니다. 이 정도는 가르칠 수 있겠거니 하겠지만 표현된 지식과는 차원이 다를 수 있습니다.
부끄러운 저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지도안의 형식을 보면 각양각색입니다. 어떤 정형된 안을 강요받기도 하고 틀에 맞지 않으면 지도안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걸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더구나 외부적인 강압이라든가 형식적인 검열을 받기 위해 작성된 지도안은 진정한 의미의 지도안이라 할 수 없겠지요.
그런 제약은 형식입니다. 지도안이야말로 선생님이 자발적 필요에 의하여 한 시간 한 시간의 수업을 위하여 작성하는 것이며, 세안이든 약안이든 간에 교과의 특성에 맞도록 연구 개발하여 수업에 활용하는 것이라면 더 없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2009.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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