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으로 살아 온 퇴임 두 달 비망록을 펼쳐 2008. 9월 1일부터 12월 7일까지의 행적을 들여다본다. 오늘은 일요산악회에서 고흥 팔영산을 등반하기로 계획되어 있었지만, 집안 행사로 참석하지 못하고 비망록을 들추어 보고 있다. 한마디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 삶이었다. 키워드를 가려보니 퇴임 후의 인사와 제자들, 동창생 정분, 동료 교수들과의 친교, 방문과 참배, 축하와 조문, 주례, 여행, 등산, 축제와 공연감상, 연구실과 방문객, 가족 모임과 손자들과의 사랑 나누기 등이다. 퇴임 후의 인사와 제자들
퇴임 1일째, ‘9월1일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전 2-3개월 간 내게 고마움을 안겨 준 귀인들에게 블로그나 카페를 통하여 감사의 인사를 담았다. 그리고 나의 교단 수상록인 ‘내 삷의 Happiness, 선생님’ 일부를 카페에 게재하면서 제자들이 운영하는 카페에 나의 퇴임인사를 실었다. 몇몇 제자들은 퇴임식에 참석하지 못한 아쉬움을 전해 오기도 했다. 퇴임 바로 다음 일요일은 산악회에 나서는 날이었다. 원로 고문님들이 나의 송축연에 직접 참석해 주셨기에 금일봉을 찬조했다. 동료 홍 교수는 산악회와 우리 부부의 인연을 영상 편집하여 회원 모두에게 보여주기까지 하였다.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생들에게는 모임을 통하여 접대와 선물을, 사범학교 몇몇 친구들에게는 수상록을 보내 드렸다. 한결같이 고마움을 전해 왔다. ‘듣세회’(음악 감상 모임) 회원들에게도 송별 점심을, 유아교육과 총동창회 집행부 제자들에게도 환담정찬을 준비했다. 항상 받기만 했던 지난날이 미안해서 퇴임 교수 세 사람이 마련한 자리였다. 송구해 하면서도 사제 간의 정을 다시 새기는 자리였다. 그런가 하면 학과 동아리인 엄지동극회 졸업생 세 사람이 지도교수인 나와 동료 교수를 초청하여 저녁과 선물을 증정해서 떠난 후에도 식지 않은 사제의 정을 느끼기도 하였다. 사제 간의 정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퇴임 후 바로 추석 명절인 관계로 제자들이 과분한 정표를 보내주었다. 평소 존경하는 은사님들에게도 나의 퇴임을 알렸다. 멀리 계시는 분들에게는 수상집을 증정하였고, 광주에 계시는 두 분은 직접 방문하여 그간의 사랑에 감사하며 명예로운 퇴임을 아뢰었다. 지금도 은사님들의 따스한 정을 체감하고 있다. 동창생 정분 사범학교 동창생들과의 끈끈한 정은 평생 잊을 수 없다. 나는 사범친구들 보다 3년 간 더 교직에 머물렀기 때문에 그동안 소홀히 했던 동창회에 약간의 성금을 보냈다. 회장은 과분하다는 말까지 보내왔지만 한 번은 해야 할 일이었기에 행한 것뿐이다. 이번 동창회에는 준비요원으로, 당일행사집행요원으로 봉사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행하고 있는 월례산악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반드시 참여하고 있다. 또한 형제 이상의 우의를 나누고 있는 우남회에는 매주 수요일 정기 산행에 참여하고 정분을 깊게 하고 있다. 초등동창회원과의 매월 만남, 중학교 동창회의 매월 모임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다.
동료 교수들과의 친교 나의 퇴임일 전야에 석별의 정을 나눈 교수-학습 연구회 동료 교수들과는 연구과제가 아직 종료되지 않은 관계도 있지만 평소의 정분으로 자주 만나고 있다. 만나면 정담과 격려, 학교 교육내용과 교육방법의 충실을 위하여 밀알이 되고자하는 의지를 키우고 있는 모임이다. 때론 1주일에 한 번씩 만나기도 했다. 학교를 떠나지 않은 느낌이다. 나의 서제가 있는 곳을 지나면서 전화로 안부를 물어주는 분도 있고, 집에 들어 온 선물을 나누어 보내는 분도 있다. 퇴임 교수 몇 분과 비슷한 연배의 현직교수 몇 분이 가칭 ‘동강교우회’를 결성하여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근황도 살피고 회포도 풀고 있다. 또한 동료 후배 교수와 망년회도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방문과 참배 퇴임 후 바로 찾아 간 곳은 서울 사돈댁이다. 손자를 맡아 기르시느라 고생이 많으신 분들에게 먼저 고마운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다. 친족도 멀리 지내면 이웃보다 멀어지게 된다. 친족과 처족 집안에도 다녀왔다. 하룻밤을 자고 왔더니 더욱 가까워진 느낌이다. 친족과 처족을 방문할 때 산소 참배를 행하였다. 자주 찾아뵙지 못한 지난 일을 사죄하면서. 최근에 남평문씨 목사공파의 전자족보를 추진하고 있어 우리 문중의 수단을 작성하여 보성군 문임에게 전달해 주었다. 시간을 할애할 수 있어, 장흥향교 전 총무장(한물회원)의 초청으로 향교를 방문하고 참례절차를 체험하기도 하였다.
축하와 조문 결혼 축하, 칠순 축하는 물론 조문을 하게 되면 이제는 직접 참석하는 자리가 많아져서 좋았다. 지난 11월 하순, 생을 마감하신 한물회 고문 교장 선셍님의 장례지(영암 미암) 참례도 평일에 참석할 수 있어서 의미가 깊었다.
주례 두 달 동안 두 친구(정광부님, 박호영님)의 자녀혼례에 주례를 맡았다. 내가 보기로는 내가 나설 자리가 아닌 것 같은데 굳이 나에게 요청을 해 왔다. 나야말로 영광이지만 행여 좋은 날 중요한 행사에 흠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주례사를 준비했다. 주례사는 친구들 자녀에게 주는 가치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효우회 박호영 친구의 따님 혼례에서는 주례가 눈물을 보이는 해프닝도 있었다. 부인께서 먼저 세상을 뜨셨고 그분의 분신이기도 한 따님의 혼인식이었기 때문이다. 여행 푸름회에서는 매달 1일 혹은 1박2일 여행 코스를 정하고 있다. 퇴임 후, 우리 부부는 3박4일 일정으로 충청도권을 여행했다. 부여 부소산성, 공주 공산성, 무령왕릉, 박물관, 유관순 기념관, 음성 큰 바위 얼굴, 음성읍 설성공원, 청원 운보의 집, 손병희 유허지, 초정약수, 상수 허브랜드, 금산 인삼 쇼핑, 인삼홍보관, 남일면 용담댐, 정읍을 경유한 여행이었다. 보기 좋고 가기 좋고, 쉬기 좋은 곳이 한국이다. 영광투어도 좋은 여행 상품이었다.
축제와 공연감상
시간이 있기도 하고 자주 돌아다니다 보니, 내장산, 곡성, 함평, 보성, 낙안, 담양 등지에서 열리는 축제를 죄다 구경할 수 있었다. 야간의 공연도 반드시 관람하고 왔다. 문화도시 광주의 자랑, 문예예술회관. 국제음악제 소극장 축제 등에 낯내놓고 출입하고 있다. 등산 등산은 건강유지의 한 방편이기도 하나 산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되새기며 오를 때 인생의 의미를 새삼 조감하게 된다. 모임에서 운영하는 등산 외에도 아내와 함께 틈이 있으면 산에 오르며 아이들 이야기, 친족 이야기, 살아 갈 이야기를 화제에 올린다. 즐거운 산행이다. 어느 날 증심사 입구까지 도보로 가서 등산을 하면 일석이조가 될 것 같아 집에서 출발해서 도착해 보니 약 5분의 차질이 있었다. 1시간 35분이 걸린 것이다. 친구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고 5분 지각이었다. 인도가 잘 정비된다면 결어볼만한 6km거리였다. 연구실과 방문객 연구실에는 조그만 음악 감상 장치가 놓여있다. 오래되고 고장 난 턴테이블이 하나 있는데, 이름 있는 제품이라 그냥 버리기는 아까웠다. 일단 반도상가 단골 수리점에 가지고 가서 진단을 했더니 수리가능하다는 판정이었다. 수리하여 음반을 올려놓았더니 소리 재현에 손색이 없다. 연구실 컴퓨터는 쉬는 날이 없다. 새 글쓰기, 새로운 자료 찾기, 내가 관여하는 사이트에 자료 올리기, 수정하기, 사진 인쇄하기, DVD만들기, 친구 카페 만들어주기…. 연구실에 귀한 손님도 내방해 주신다. 반갑고 소중한 분들이다. 큰사위가 보내준 긴 책상이 내겐 서도를 즐기는 계기가 되었다. 요새는 반야심경을 임서하는 재미도 생겼다. 그뿐이랴! iptv 덕분에 영화 감상도 자주 하게 된다. 고전영화로부터, 현대 영화, 세계여행 및 다큐, 거기에 음악 산책도 들어 있다. 안락하지는 못하지만 이용만 잘하면 즐거운 소일장소가 될 것이다.
가족 모임과 손자들과의 사랑 나누기 퇴임 후 가족 모임이 부쩍 늘었다. 만나면 우리야 좋지만 아이들이 오고 가는 데 불편이 없기를 바란다. 손자들이 자라는 모습이 아름답고 대견하기만 하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멀리하지 않아서 좋다.
이런 일상으로 지내온 지난 두 달. 많이 바빴다. 그렇지만 사는 맛이 보인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 많은 것들을 모두 취하려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이다. 재테크가 부족한 사람이지만 정해진 가계비로 적절하게 용처를 구한다면 크게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일상으로 살더라도 흠은 적겠으나, 퇴임 후 30년이 된 어느 학자의 말씀처럼, 그저 그날그날 소일하는 데 급급하다보니 긴 세월 허송이었다는 자책이 생기지 않도록 자그마한 일들이라도 각각을 실하게 완성하는 일상이 되었으면 좋으리라. 퇴임 후 1년은 바쁘게 돌아간다더니 내게도 딱 들어맞는다. 하기야 다음 주에도 모두 예약된 생활로 예정되어 있으니 이 아니 행복한 일인가! (2008.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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