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理放談

[스크랩] 도전하는 제자들이 아름답다

문기정 2012. 10. 15. 19:58

 

 

도전하는 제자들이 아름답다

 

 

 

50년 전.

6학년 교실에는 잔잔한 긴장이 흘렀다.

오답 투성이 답안지를 들고 선생님의 처분을 바라는 순간이다.

당연히 응분의 체벌을 감수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 아이를 벌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기초학력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때린들 무슨 소용이랴.

선생님은 방과 후에 아이를 남겨두고 기초학력보충지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랬던 그 아이.

10년 후에 떡하니 중학교 국어 선생으로 발령을 받았으니 그 아니 대견한가.

그 아이는 중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내면에 잠재된 자신의 가능성을 충분히 발휘하여 일취월장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001년 가을로 기억되는 일.

곡성이 고향인 박 학생은 2학년 1학기 성적이 아주 우수하여 상위 장학금을 받았다. 불행히도 집안이 넉넉지 못하여 학비조달이 어려운 형편이었고, 시골의 수입이라야 고작 벼농사 지은 걸 추곡수매로 몇 푼 모은댔자 농자금으로 고스란히 들어가 버리니, 학비는 엄두도 못내는 터인데, 다행히 장학금을 받아 그나마 학교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학생의 어머님은 장학금을 받게 된 기쁨과 지도교수에 대한 보답으로 햇밤을 주워 작은 상자에 넣고 보자기로 포장을 한 채, 학생의 손에 들려 보낸 것이다. 박 학생은 매사에 너무 열심이었기 때문에 반 친구들로부터도 범생으로 통했다.

 

이왕 반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 때 내가 담당했던 40명 학생들이 한결같이 똘똘 뭉쳐 뭐든지 열심이었다. 마침 그 때, 서울 한신대학교 출신 45세 김종권 목사님도 학생으로 있었는데, 이분께서 학급의 분위기를 잘 만들어 주었다. 지각한 학생, 학습에 태만한 학생이 있으면 조용히 타일러 주는가하면 번번이 반 단합대회 물주가 되어 지도교수를 꼭 초청하곤 하였다. 때론 등산도 하고, 노래방도 가고, 야외 경기도 하면서 모두의 마음은 더욱 결속되었다. 유달리 그 때 그 반 학생들 가운데는 나이가 지긋한 학생들이 많아서 이들이 매사에 성실하고 뒤에서 받쳐주면서 단합이 더 잘 되었던 것이다. 당연히 장학생도 휩쓸었고, 취업도 100%였다. 전무후무한 기특한 반이었던 것이다.

 

박 학생은 그런 모범 반 중에서 모범생이니까 이미 앞길이 트일 걸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4년제 대학에 편입해서도 나의 연구실에 들러 학업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며 그 대학교 교수님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물론 돈 한 푼들이지 않고 장학생으로 졸업했다.

그런 박 학생이 2006학년도 광주광역시 유치원 교사 임용고사에 당당히 합격이 되었다는 공문을 보았다. 당연한 일인 줄 알면서도 어찌나 기쁘고 대견한지, 한 동안 여기 저기 알리느라고 신이 났었다. 햇밤 한 상자를 받으며 고마웠던 추억과 합격의 영광을 보면서 나는 스스로 가벼운 흥분에 쌓였다. 자신을 위하여 피나는 노력 뒤에 다가선 행운의 여신에게 한없이 고마워하면서.

 

당시 광주광역시 임용고사 합격자 40명 중 7명이 우리 대학 출신이었다.

하루는 정 조교가 1차 합격생 명단을 가지고 와서 우리 대학 출신이 7명이던데요.” 하기에 그래? 이름들이 유사해서 혹시나 했었는데.” 정 조교는 1차 합격생 48명의 이름을 우리대학 졸업자 검색을 통해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한 후, 교육청 합격자 조회를 주민등록번호로 확인해 보니 우리대학 출신이 7명이었던 것이다.

크나큰 영광이요 고마움이다. 결과만을 가지고 학교의 명예를 앞세우기 전에 그들이 고군분투했던 어려웠던 시절, 조금만 더 위로와 조력을 했더라면 우린 얼마나 떳떳했겠는가.

 

다음 해, 00 학생도 졸업 한 지 2년 만에 광주광역시 임용고사에 당당히 합격하였다(합격자 10명 중). 임 양은 전남대학교 졸업생으로서 우리 학과 3년제에 입학하여 졸업 1년 후 합격한 수재로, 재학 시 학과의 주요한 일들을 잘 도와주었던 어른스런 학생이었다.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하고, 전남대학교 대학원 유아교육과 석사과정에 합격하여 수학하던 중 첫 아이를 출산하게 되자, 대학원 학업을 일시 중단하고, 쉬는 동안 임용고사 준비를 했던 것이다.

 

이들의 피나는 노력의 과정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도전하는 제자들의 아름다움을 되새기고 있다.

 

(2012.10.15.)

 

 

출처 : 문기정 심리교육 디오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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