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理放談

[스크랩] 45년 전의 자화상

문기정 2012. 5. 1. 08:12

45년 전의 자화상

 

 

 지난 토요일(4.28), 45년 전에 가르쳤던 제자들의 초청으로 당시에 담임선생 세 사람, 제자 60여명이 함께 만났다.

 제자들도 장년에서 노년으로 가는 길목이니 사제 간의 연령 격차가 크지 않다. 대체로 1955년 적령이니까.

 

 세월이 많이 흘러 그 때 그 시절의 얼굴을 잘 기억하기 힘들었지만 어린 시절의 그 모습을 회상했다. 그들은 그 당시 선생님의 모습을 잘도 기억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이 평생 남는다는 이야기다.

 

 우린 그 때, 중학교 입시를 앞둔 해였다. 교과서 본문을 다 외워야 시험에 낙방하지 않는 때인지라 6학년을 담임하던 분들은 나름대로 기억술을 개발하여 장기기억을 유도해야 했다.

 

 기억술이 다양했지만 단기 완성형 기억술은 교사마다 달랐다.

-어느 분은 경쟁을 유도했다.

-어느 분은 회초리를 들었다.

-어느 분은 반복 연습의 방법을 동원했다.

-어느 분은 외우기 기법을 활용했다.

 

 모두 다 외우고 정답을 이끄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던 터라 이때 모인 제자들은 한결같이 그 시절의 학교생활을 좋은 추억으로 승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비춰진 진정한 나의 모습은 어땠을까.

 이들은 내 고향의 후배들이기도 하기에 학부모들은 거의 나의 선배님들이다. 자식을 맡기면 선생님에게 모든 것을 양해했던 시절이다 보니 교실은 소위 소왕국이었다고나 할까. 입법, 사법, 행정권이 모두 교사에게 주어졌고, 게다가 자식들이 성적이 오르면 담임을 추앙하던 시절이다.

 

 우린 공휴일도, 방학도 없이 교과서에 매달렸다. 그렇다고 과외 교습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더우면 교정의 나무그늘에서, 또는 학교 앞 개울에서 미역을 감기도 하고, 공부하다 지치면 운동장에서 축구도 했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긴 했지만, 못자리할 때면 일손도 돕고, 가을이면 벼 베기 동원도 참가하고, 가을 운동회를 준비하느라 수업 결손도 감수했던 시절이었다.

 

 공부를 잘하면 잘한 대로, 못하면 못한 대로 주어진 채찍이 강했다. 그래도 이를 감수했던 아이들이다. 왜냐하면 그 채찍에는 나쁜 감정이 들어 있지 않았다. 단체가 벌을 서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순박한 시골의 학생들은 선생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했던 때다.

 

 그 때의 자화상을 지금도 가끔 되돌아보게 된다.

 최소한 다음의 원칙은 고수하려고 했는데 제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가르치는 데 최선을 다하고 가르치는 데 권태를 느끼지 않는다.

-학생 개개인의 속성을 파악하고 조그만 진전이라도 있을 때 더욱 채찍을 가한다.

-성공을 격려하고 실패에 도전하게 하는 양면작전을 활용한다.

-쉽게 가르치고 쉽게 이해하며, 쉽게 외우는 방법을 개발한다. 그러러면 교과서에 나온 모든 실험을 다 해 보아야 하고, 무조건 외우는 게 아니라 반드시 원리를 이해하고 외운다.

 

 다행히 희망 중학교에 전원 진학하게 되었고 그를 발판으로 오늘의 제자들이 되었다는 섧지 않은 말을 들으니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어린 애들을 너무 입시에 매달리게 하지 않았나 하는 미안함이 남는다.

 

 연회가 끝나고 집에 온 즉시 그들이 운영하는 카페에 글을 남겼다.

 

 

사랑하는 36회 제자들에게

 

우리 제자들 224명이 어린 시절 꿈을 꾸었던 웅치초등학교.

45년 전 이야기로 되돌아가 어린 시절 선생들과의 추억으로 상봉한 그날,

2012년 4월 28일을 어이 잊으랴.

 

서울에서, 부산에서, 인천에서, 수원에서, 부산에서, 광주에서, 우리 고향 보성에서 그리고 여타 지역에서,

먼 곳 망설이지 않고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만나,

동심으로 돌아가 자리를 같이한 우리 제자들,

그 때 그 시절을 그리면서 우리는 웃고, 웃고 또 소리치고 노래했네.

 

우리 제자들은 이제 장년.

인생의 황금기에 있으면서 삶을 음미하며 인생의 값진 족적을 남기리라 확신하네.

아무쪼록 제자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항상 행복이 넘치길 기원하며

나 자신도 여러분과 같은 세상에 살면서 아름다운 인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려네.

 

우리 내외,

제자 여러분에게 신세를 많이 져서 미안하이. 그 고마움 오래 간직하겠네.

고마웠어. 모두들 평안하기를.

 

4월 29일 문기정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당시의 교육 패턴은 극단적인 행동주의였다. 특히 ‘강화’기법을 많이 활용한 것이다.

 강화계획에는 적절한 보상이 항상 또는 간헐적으로 주어져야 한다. 강화로 인하여 학생들은 동기가 형성되고 또 강화를 받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교직경력이 늘어나면서 강화만이 능사가 아닌 것을 깨닫기 까지 약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교육방법 연수를 무수히 받고 현장연구를 거듭했지만 과거의 익숙했던 강화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교직 20년 후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부터 강화와 구성주의를 병행하게 되었고, 정년 무렵 많은 부분 구성주의에 따르게 되었다고 본다.

 

 이렇게 보면 사범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그 때의 교육방법이 평생을 좌우했기 때문이다. 자주 새로운 방법을 탐구하고 그 방향으로 교육을 하려고 시도했지만 자꾸 과거로 회기 했던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된다.

 

 오늘날, 대학에서 사범 교육을 받고 있는 모든 예비교사들에게 당부하고자 한다.

 여러분은 교직을 천직으로 선택한 이상, 확고한 교육철학과 그 철학의 바탕 위에 최적의 교육방법을 선택하고 끊임없는 연수를 통하여 교육방법을 개선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권고를 드린다.

 

(2012.5.1.)

 

출처 : 문기정 심리교육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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