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
좋은 아침
문명은 부모들을 어린아이들이 가장 재미있어하는 놀이를 방해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아이들이 손가락을 빨거나, 성기를 만지거나, 콧구멍을 후비거나, 먼지투성이 속에서 놀거나, 큰소리로 떠들면, 부모들은 이를 말린다.
아이들에게 문화는 차갑고 잔인하다. 문화는, 아이들에게 어머니의 포근한 젖가슴 대신 딱딱한 우윳병을, 따뜻한 천 기저귀 대신 차가운 변기를 내놓는다. 전에는 부르기만 해도 달려와 다독거려 주었지만, 이제는 아이 스스로 참고 있어야 한다.
부모는 지나칠 정도로 문명을 위한 경찰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임G. 기너트-
오늘은 새로 입학한 어린이의 학교생활 한 달이 되는 날, 등교일이다.
첫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어머니는 마음이 급하다. 아침마다 잠을 깨우느라 진땀을 뺀다. 아이가 한참 단잠을 자고 있는데, 꿈을 방해하며 아이를 깨우면 아이는 화를 내게 마련이다.
그렇기는 해도 아이를 깨우지 않으면 지각을 할 테고, 지각을 하면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받을 게고, 친구들이 잠꾸러기라고 별명을 붙일 것이므로 아이를 제 시간에 깨우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깨우는 방법이다. 아이가 기분 좋게 잠을 깨는 방법이 없을까?
7시가 되면, 어머니는 기분 좋은 목소리로
“영수야, 일어나! 해가 떴네.”
라고 말해 본다.
소위 ‘자명종 어머니’다.
이 때 가분 좋게 일어나는 아이가 몇이나 될까?
역시 아이는 일어나지 못한다.
급기야 어머니는 부드럽게 대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 신경질 적으로 대한다.
“영수야, 빨리 일어나지 못해. 또 지각할래?”
그럴 때마다 아이는 꾸물꾸물 일어나 기분 나쁜 표정으로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학교에 가지만 지각하기 일쑤이다.
아침 마다 아이와 실랑이를 벌인 어머니는 화도 나고 피곤하다.
어머니는 한 가지 묘책을 생각한다. 어머니 본인이 자명종이 될 게 아니라, 차라리 ‘자명종’에게 맡겨 보자.
어머니는 자명종을 선물로 주면서 이렇게 썼다.
「아침에 다른 사람이 일찍 깨우는 걸 싫어하는 영수에게.
이제는 시계의 주인이 되렴.
사랑하는 엄마가」
영수는 놀라면서도 기분이 좋다.
“엄마, 아침마다 깨우는 것을 싫어하는 줄 어떻게 알았어?”
“생각해 보니까 그럴 것 같았어.”
다음 날, 평소보다 10분 일찍 자명종이 울리고, 아이가 깨어 일어났다.
“영수야, 너무 일찍 일어났어. 조금만 더 누워 있지 그러니?”
“아니야, 학교 늦으면 안 돼.”
며칠 후, 자명종이 울려도 일어나지 못한다.
어머니는 느긋하게 말한다.
“오늘 아침에는 일어나기가 힘든가 보네.”
“침대에 누워서 꿈꾸는 것처럼 기분 좋은 일이 없지.”
“5분만 더 자거라.”
이렇게 말한다면 아이는 기분이 좋아지고 바로 일어나게 될 뿐만 아니라 친밀한 엄마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반대로 화를 내고 조롱과 비난을 늘어놓으면 분위기는 냉랭해진다.
“얼른 일어나, 이 게으름뱅이야.”
“당장 침대에서 쫓아낼 거야.”
“잠꾸러기, 또 지각할 거야?”
아이가 병이라도 난 것처럼 끙끙대고 있으면 엄마는 조바심이 난다.
“너, 병났니? 어디가 아파? 배탈 났어? 혀를 내봐.”
이렇게 되면 어머니의 다정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게 되니, 날마다 병이라도 나야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꾀병을 부리는 이유가 뭘까?
아이들은 서두르라고 하면 더 꾸물거린다. 독촉하는 부모에게 반항하는 것이다. 자기들이 만들지도 않은 시간표에 얽매이는 것에 저항하는 행동인 것이다. 꾸물거리는 것이 일종의 능률적인 반항무기인 셈이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아무리 바빠도 서두르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신에 시간이 얼마만큼 남아 있다고 알려줌으로써, 자신이 시간에 맞추도록 맡겨두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시간을 맞추는 일은 아이의 책임이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며 아이에게 긍정적인 기대를 안겨주는 일이다.
“시간이 남으면, 게임 한 번 하고 가지 않겠니?”
느긋한 부모, 시간을 여유 있게 사용하는 아이, 좋은 아침이다.
(201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