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벽에서 벗어나기
악벽에서 벗어나기(1)
부모는 아이가 잘 될 걸 믿고 무심코 잘못된 행동을 한다. 이는 부모의 악벽(잘못된 습벽)이다.
예를 들면 아이를 위협하는 일, 조건을 붙여 아이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일, 비현실적인 약속을 강요하거나 부모가 일방적으로 약속하는 일, 아이를 빈정거리는 일, 권위를 앞세워 간섭하는 일,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을 마련하는 일, 잘못을 지나치게 추궁하는 일, 성급하게 아이의 행동을 바꾸고자 하는 일, 지나치게 예절을 강요하는 일 등….
부모는 이런 일들로 아이들과 씨름을 하면서도 자신의 악벽을 모르고 지낸다. 이제 이런 악벽에서 벗어나는 방도를 생각해 보자.
*위협하는 행동에서 벗어나기
위협은 아이에게 금지된 행동을 반복하게 한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당연한 듯싶지만 위협이나 경고는 차라리 하지 않는 것만 못하며 아이들로 하여금 바르지 못한 행동을 되풀이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위협(경고)은 자율성에 대한 도전이다. 자존감이 강한 아이일수록 경고를 받으면 자신을 더 내보이기 위해 다시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할 수가 있다.
“한 번 더 유리창에 공을 던지면 혼내줄 거야. 두고 봐.”
잠시 후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난다. 이와 같이 위협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런 장면이 펼쳐지리란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대처하면 어떨까.
“유리창에 던지지 말고 이 벽에 던져 봐.”
그런데도 또 유리창에 공을 던진다.
엄마는 공을 빼앗으며 아이를 타이른다.
“공을 유리창에 던지는 게 아니야!”
엄마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취하여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했다.
아이도 자존심을 상하지 않으면서 자기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알게 된다. 분명히 대안이 암시되어 있다.
온순하지 않은 아이일수록 경고나 위협을 받으면 오히려 금지된 행동을 되풀이하는 식으로 대응한다. 부모들은 누구든 쉽게 이런 악벽에 빠져드는 것이다.
*조건을 떼고 말하기
무엇을 하면 상을 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밥을 잘 먹으면 과자 사줄게.”
“숙제를 빨리하고 놀이공원에 가자.”
“말을 잘 들으면 장난감 사줄게.”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이 TV의 만화 등 재미있는 일에는 밥 먹는 것조차 잊고 열심히 몰두하며 숙제하기를 싫어한다면 숙제를 열심히 마치면 TV나 컴퓨터 게임 등 아동이 좋아하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아동에게 흔히 쓰이는 활동으로는 동화책 읽어주기, TV 보기, 숙제를 끝마치는 대로 먼저 집에 가기 등이 있다.
소위 프리맥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다.
프리맥의 원리(Premack Principle)는 1965년에 프리맥(D. Premack)이 체계를 세워 정리한 것이다.
그 요점은 사람들에게 어떤 한 가지 활동을 끝마친 후 보다 더 바람직한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주겠다고 약속함으로써 그 활동에 몰두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활동이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도록 하는 데 사용되는 강화물로서, 싫어하거나 잘 하지 않는 행동을 촉진시키는 데 사용된다.
흔히 교사들은 학생들이 어떤 공부를 끝낸 후 자유 시간을 줄 때 이 원리를 이용하고 있다. 성인들도 역시 열심히 노력하여 어떤 어려운 과업을 성취했을 때 큰 잔치를 열어 자신에게 보상을 한다. 이를테면 바람직한 행동을 증가시키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이런 식으로 조건을 붙이면 당장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지속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조건을 붙이는 말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아이의 행동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넌 스스로 밥을 못 먹는 아이야.’
‘스스로 숙제를 하지 않는 아이야.’
부모가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도의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바른 행동을 했을 때만 부모는 대가를 치르겠다는 것이니 야속한 일이다.
이런 식으로 길들여지면 부모는 집에 들어올 때마다 과자 봉지를 사들고 와야 한다.
*아이가 감당할만한 약속하기
약속을 잘 못하면 아이에게 비현실적인 포부를 갖게 한다.
“다음 시험에는 꼭 100점을 받아야 해!”
만점을 받을만한 능력이 있더라도 이는 비현실적이다. 사람은 가끔 실수를 할 수 있는데도 완벽을 강요하거나 일방적인 약속을 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것이다. 더욱이 능력이 못 되는 아이에게 100점을 강요하는 약속을 한다면, 아이는 현실적으로 감당하지 못한다.
가끔 부모들도 부도수표를 발행하는 일이 있다.
“내일은 야외 공룡공원에 놀러가기로 하자.”
그런데, 다음 날 비가 오고 바람이 불었다.
대안을 마련한다면 모르겠으나 약속이 파기되면, 소풍을 가지 못한 아이는 자연히 불평을 하게 될 것이고, 부모는 부모대로 약속을 하지 말걸 그랬다며 뒤늦게 후회한다. 부모들은 이련 악벽에 익숙하니 탈이다.
*조용히 타이르기
다음의 예화는 장황한 설명보다는 짤막한 한 마디가 더 효과적이라는 걸 보여준다,
엄마는 손님을 대문 앞길까지 배웅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여덟 살 둘째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형에 대해 한바탕 푸념을 늘어놓는다.
“형은 엄마만 없으면 내 동화책을 뺏어가. 안 주려고 하면 날 괴롭혀. 형한테 그러지 말라고 말해!”
엄마는 옛날 같으면 형 아이에게 이렇게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동생을 가만 놔두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알겠나? 말 들어. 그렇지 않으면 네 용돈을 안 줄 거야!”
하지만 이번에는 형 아이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영수야, 선택해. 평소처럼 야단을 맞을래? 아니면 동생의 불평을 네 스스로 해결할 테냐?”
형 아이는 웃으면서 말한다.
“알았어요. 엄마, 앞으로는 안 그럴게.”
부모의 악벽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를 알고 개선하는 노력이 요구될 뿐이다.(다음 연재 계속)
(201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