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방법

[스크랩] `엄마학교` 서형숙씨의 `좋은 엄마` 되기 공부

문기정 2007. 8. 17. 15:18
 

 

 

 

'엄마학교' 서형숙씨의 '좋은 엄마' 되기 공부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해주고 비싼 과외 선생님을 붙여주고,

위험한 집 밖 세상으로부터 엄마가 늘 따라다니며 지켜주고,

이렇게 모든 것을 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니까 그때부터 불안해하고,

아이 키우는 것을 부담으로 느끼고…

결국 아이와 엄마 모두가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요즘 보통 엄마’들과는 다른 교육 방식으로

두 아이를 훌륭하게 키운 멋진 엄마가 있다.


고 3 때 태국에서 열린 세계잼버리대회 운영요원으로 참여한 큰딸,

초, 중, 고 전교회장을 맡아 리더십을 발휘한 아들,

학원을 전전하지 않았지만 명문대에 입학했고

더욱이 지덕체를 겸비했다며 칭찬이 자자한 두 자녀.

'밥 짓는 법을 배우듯이 엄마 되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엄마학교 서형숙 교장.


그녀가 말하는 엄마와 아이가 모두 행복해지는 비결을

5월 11일 CBS '손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에서 들어보았다.

아래는 그 인터뷰 내용이다.


세계 최초로 문을 연 '엄마학교'


▶ 엄마학교가 어디에 있습니까?


서울 북촌 계동마을, 한옥의 작은 집에 엄마학교를 꾸며놓고 있습니다.

학교가 11평으로 아주 작기 때문에 전화를 받으시는 분이 한분 계시고

교사는 저 혼자 있어요.

학생들은 주로 신청하는 분들이 와서 듣고 가시는데

아기엄마도 있고 신혼부부인 예비엄마도 있고

손주를 돌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시기도 해요.

또 요즘은 아빠들이 워낙 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아빠들도 오세요.

무엇보다 행복하지 않으니까 행복을 찾아서 오시는 것 같아요.


▶ 수업은 어떻게 진행하세요?


매주 1회씩 와서 한 달 동안 듣는 프로그램도 있고

'다정한 엄마 되기'  '영리한 엄마 되기' '대범한 엄마 되기',

또 행복한 가정에서 행복한 아이가 자라니까 '행복한 엄마 되기',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단호하게 자기 자신을 끊어야 해요.

아이에 대한 욕심도 끊고 서두르는 것도 끊고 강해져야 하는 부분도 있어요.


▶ 학비는 따로 받으시나요?


예. 제가 개인적으로 열었고, 집기들을 아주 볼품 있는 것들로 꾸몄어요.

엄마들이 아이들을 기르느라 고생하는데 호사 좀 하시라고

하다 못해 변기덮개며 수건이며 다 손으로 수놓은 것으로 구비되어 있고

차도 와서 마음대로 꺼내 드실 수 있어요.

그리고 엄마 되는 법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듣는 곳에는 꽃방석이 있는데

그것도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고 수를 놓은 거예요.


작년 9월부터 시작을 했어요.


▶ 엄마학교가 굉장히 신선한데 다른 나라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나요?


다른 나라에는 없고 우리나라도 이런 걸 처음 열었는데

당연히 아이만 낳으면 엄마가 된다고 생각을 해서 없겠죠.

하지만 킬트도 배우고 요가도 배우고 영어회화도 배워요.

그런데 가장 시급하면서 정작 중요한 엄마 되는 법은 배우지 않아요.

또한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육아가 참 달콤했거든요.


그래서 교육이 아주 편안했고 24년 동안 남편과 사는 생활이 아주 행복했어요.

그런 이야기들을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고 제 이야기에 열광하는 분들이 있어요.

좋은 엄마 되는 거는 일단 돈이 들지 않고 학식이 필요 없거든요.

모든 엄마가 마음만 먹으면 그리고 눈을 뜨면 할 수 있어요.

애먹이지 않고 내 인생을 포기할 필요도 없고,

아이 인생을 닦달할 필요도 없이 같이 화합하고 웃으면서

이 땅 위의 삶이 천국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달콤한 육아, 편안한 교육, 행복이 두 배


▶ 보통 부모들은 아이들이 자기들이 알아서 컸다고 말하잖아요?


모든 엄마들이 자기가 키운 줄 아는데 정말 아니에요.

자기가 먹고 힘써서 자기 살을 불리고 뼈를 키우잖아요.

생각도 물론 길을 놓아주고 학교를 다니면서 아이들이 배우기도 하지만

결국 영리해지는 건 스스로 배워서 된 거예요.


저는 아이 키우면서 오히려 제가 컸어요.

이렇게까지 세상을 보는 눈이 넓고 깊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아이를 기르다보니까 용기도 배우게 되고

배려도 배우게 되고 인내도 배우게 된 거예요.


▶ 자녀를 키울 때 원칙이 있으셨나요?


 

삶의 목표가 있었다고 할까요. 오늘 사는 것처럼 살자고.

어릴 때부터 부부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오늘 사는 게 진짜지, 우리에게 내일이 있을 수 있나?

그렇다고 내일을 위해서 오늘 저축하지 않고 준비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내일을 위해서 오늘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면 나중에는 누릴 게 없잖아요.


오늘이 지옥 같다면서 사람들은 놓지를 않아요.

그래서 오늘을 살다 보니 수행평가 만점 받아오기,

또는 명문대나 특목고를 가는 게 우리 삶의 목표가 아니었어요.

숙제 같은 경우는 스스로 하게 했어요.


학생신분이니까 학교에 갔다 오는 것, 시간 지켜서 잘 해야 하고

수업시간에 열심히 선생님 들여다보고 거기서 온 숙제는 스스로 하게하고

어려운 게 있으면 물어보게 했어요.


그런데 제가 해보니까 화낸다고 말을 듣는 게 아니더라고요.

한번 화내면서 말을 했는데 아이도 못 알아듣고 저도 기분만 나쁘더라고요.

그래서 다음에는 웃으면서 부드럽게 이야기했어요.

왜냐하면 목표가 이 아이가 숙제를 하는 것이지 화를 내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전업주부였을 때도 저녁 9시에 집 안에서 퇴근을 하겠다고 했어요.

사실 전업주부는 퇴근이 없고 야근이 있잖아요.(웃음)

“9시 이후에는 아이를 안 돌봐주니까 숙제 있으면 9시 전에 엄마에게 물어봐.”라고 이야기해도

사실 아이가 잊어버리죠.

그러면 다음에는 이렇게 해야 된다고 하면서 며칠을 과도기를 가져요.


일주일 정도 지난 후에 책가방 싸다가 밤 10시가 지났는데 숙제를 아직 안했어요. 어려운 숙제라서 미뤄둔 거였거든요. 엄마, 엄마하면서 따라다니기에 제가 그랬어요.

“어! 10시네, 엄마 없네!” 그것으로 끝이었어요.

말의 중요함, 말한 것은 꼭 지켜야 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거죠.


사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어요.

이 숙제는 정말 중요한 숙제라서 이번만 해줄까,

점수가 많이 깎일 텐데 하는 마음이 생기죠.


하지만 태어나는 순간 엄마와 아기는 탯줄을 떼어야 서로 살 수 있는 것처럼,

옆에서 아무리 엄마가 숨을 쉬어줘도 아이에게는 도움이 안 되잖아요.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가 해야 하는 일은 할 수 있도록 탯줄을 뗐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준비물도 현관에 놓고 꼭 안 가져가요.

아이니까 주의력이 부족하잖아요.

그러면 준비물은 빼먹지 않도록 꼭 책가방 안에 넣어놓으라고

말로 익숙해질 때까지 가르쳐 주고,

그래도 놓치고 가면 속은 아프지만 안 갖다 줘요.

그러면 아이한테 전화가 오죠.

“엄마, 준비물 안 가져왔어요. 가져다주세요.”

“내가 학생도 아닌데 왜 학교에 가니?” 그랬더니

“엄마, 1년에 한 번이잖아요.”

호기 있게 평생에 한 번 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데

말의 중요함을 아이도 저한테 익히 들어서 알고 있기 때문에

아직 12년은 학교에 다녀야 하니까 12번의 카드를 남겨놓는 거예요.

그래서 갖다 주는데 그러면서도 저는 대가를 받았어요.


학교에 찾아가는 것은 근무 내용이 아니라고 뽀뽀하라고 했더니

구석에 데리고 가서 뽀뽀를 하더라고요.(웃음)

14년 전의 추억인데 그런 것들이 그후 거의 없어요.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놓아주는 게 엄마의 역할인 것 같아요.

크는 걸 봐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교육이 편안하고 달콤할 수밖에 없었지요.

만약 그래도 안 한다면 할 때까지 길을 놔 주는 거죠.

엄마가 기다리고 작은 일에도 칭찬하면서요.


▶ 교육방법이 딸과 아들이 다른가요?


아들은 엄마에게 매달리고 딸은 아빠에게 매달리는 것 같아요.

우스갯소리로 옛날에는 삼종지도가 있었다.

여자는 세 남자를 따른다. 어렸을 때는 아빠를, 커서는 남편을, 늙어서는 아들을.

지금은 남자를 세 여자가 기른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키우고 부족한 것을 아내가 채우고 또 나머지는 딸이 키워요.


▶ 아이가 스스로 잘 할 때까지 기다려준다고 하셨는데,


아이가 공부만 잘 한다면 나도 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큰 아이도 공부에 부족한 게 있었고 작은 아이도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공부를 잘 하지는 못했어요.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교육열이 유난한 동네에서

살았는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들어갔을 때는 꼴등을 했어요.

다 100점 받았는데 혼자만 50점을 받아왔어요.

50점 받은 아이는 0점도 맞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하지만 그것도 잘했다고 제가 박수를 쳐줬어요.

“5개나 맞았네. 엄마랑 100점 만들자.” 해서 서서히 점수를 올렸어요.


또 초기에는 학교 부적응으로 등교거부도 하고

화장실도 가기 어렵다고 하고 어울려서 뛰노는 것도

운동하는 것도 싫어했는데 적응하기 시작하니까 어울려서 뛰놀더라고요.

욕심이 없어서 아이를 달콤하게 길렀던 것 같아요.

남이 보기에는 못났어도 “예뻐, 잘났어, 너는 내 곁에 살아있음에 충분해”

하면서 아이의 초점으로, 아이의 입장에서 바라봤어요.


▶ 서형숙 교장선생님의 어머니는 서형숙씨를 어떻게 키우셨나요?


저희 어머니는 옛날 어머니세요.

본인의 원칙대로 사셨는데 굉장히 엄한 편이셔서

저는 다정한 엄마가 좋았어요. 제가 엄마 되기를 참 쉽다고 생각하는 게

이런 엄마가 되었으면 하고 꿈꾸었어요.

엄마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고 목소리를 들으면 시름이 사라지고

더 다정하게 아이와 소통할 수 있는, 두 팔 벌려 환하게 맞아주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부족하든 뭐든 간에 받아줬더니 저희 아들 표현으로는

“엄마, 어떤 엄마가 제일 무서운 줄 알아? 웃는 엄마야.”

웃는 엄마의 웃음에 부응하기 위해서 자기 인생이 바쁘대요.(웃음)


엄마, 일상의 사소한 것을 가르쳐줘서 고마워요


▶ 매를 들어보신 적은 있으세요?


한 번 들어봤어요.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인데 뭔가 화가 나는 일이 있었어요.

화가 난 것은 이해를 하겠는데 문을 쾅 닫고 계속 부어가지고

말을 곱게 안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러지 말아라. 화가 나도 곱게 말하고 속상하다고 문을 쾅 닫지 마라.

풀자, 그거 풀어야 돼.” 몇 번을 이야기했는데도 듣지 않아서

맞아야 되겠구나 싶어서 같이 회초리를 주우러 밖에 나갔어요.

“네가 말을 알아들을 때인데 말을 못 알아듣고, 말로 표현도 못하고...”

조용조용히 이야기했죠.

종아리 5대를 때리겠다고 하고 아이를 회초리로 때리고 나서 저를 때렸어요.

엄마가 너를 잘못 가르쳤으니까, 엄마 때문에 네가 이러는 거니까

엄마도 5대를 맞는다면서 허벅지를 때렸거든요.

있는 힘껏 때렸는데 맞을 일 없이 자랐다가 아이 기르면서 맞고보니

얼마나 아프든지.(웃음) 그때는 아무 말이 없었는데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어요.


남편도 아이한테 2번 정도 매를 들었는데 제가 불쾌하더라고요.

내 아이를 때리는 것 같아서(웃음) 말로 하라고 말렸어요.

아이들이 중1, 초등학교 5학년 때였는데

사실 거의 사춘기 없이 보낸 아이들이거든요.

그래도 자기 마음이 불편하다고 문을 쾅 닫거나 버럭 소리를 지른다거나

하는 것은 안 된다고 늘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제가 보니까 사춘기라서 그래, 원래 저래, 크면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그때를 잘 넘기지 못하면 계속 그 습관이 남아 있어요.


아이들이 어느 날 그래요.

“엄마, 사소한 것들을 가르쳐줘서 고마워요.

가끔 보면 입 벌리고 있는 아이들이 있는데 입 꼭 다물고 있는 것,

팔짱낄 때 기대듯이 끼지 않고 가볍게 끼는 것,

그런 것들을 가르쳐줘서 내가 잘 큰 것 같아요.”

또 작은 아이는 "엄마가 어렸을 때 생선을 발라주고

또 발라먹는 방법도 가르쳐줘서 생선을 발라먹는 게 귀찮아도

그 맛을 알기 때문에 생선을 먹을 수 있는 것,

엄마가 착한 일을 많이 해서 내가 전교회장이 쉽게 되었나 봐요.” 그래요.

아이들이 저를 업어주기도 한답니다.


▶ 둘째인 아들이 말을 왜 더듬었나요?


아이들이 잠깐 그럴 때가 있어요.

모든 아이들이 살짝 말을 더듬는 시간을 지나가요.

그런데 아들은 6개월을 심하게 지나간 적이 있어요.

아이가 이야기할 때 가끔 귓등으로 들을 때가 있잖아요.

설거지를 하다가도 듣기도 하고 책을 보다가 듣기도 했는데 아이한테 집중했어요. 그러면서 항상 아이가 태어나면서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엄마가 다 들을게, 천천히 말해.” 아이 말을 끊지 않고 들었어요.


아이한테 가끔 이야기를 해 줬어요.

“네가 왜 이러냐 하면 생각은 빨라지고 좋아지고 많아졌는데

말이 빨리 못 따라 가서 그래.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 두 개가 합쳐지거든.

그래서 걱정이 없어.” 그러면서 계속 기다려줬어요.

“그래, 그렇구나.” “말하고 생각하고 같이 말하려고 하는데.”

그 정도만 이야기하고 내버려뒀어요.

몇 개월 뒤에 제대로 말을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참 신기한 게 아이를 기르면서 엄마가 큰다는 이유가

제가 제 말을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내 말이 빠른지, 발음이 정확한지,

이런 것을 볼 때 아이가 말을 또박또박하고 정교하게 하게 되었죠.



저희 딸도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하니까 한 달 뒤에 담임선생님이

“발표만 하면 모기소리를 내요.” 너무 작아서 안 들린다는 거예요.

발표력이 전혀 없는 거죠. “선생님, 학교에서 말하기, 듣기 배우잖아요.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잘 배울게요.”

그러면서 아이 손을 잡고 집으로 오면서 3년 계획을 잡았어요.

정말 잘 들어주고 한 달 지난 후에 똑바로 서서 말해 보라고 하고

또 한 달 뒤에는 TV앞에 서서 말하게 하고

이런 식으로 몇 달에 한 번씩 요구를 하고 그냥 뒀어요.

당장 좋아지지 않아도 화가 나지 않은 이유는 서두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3년 뒤에 좋아질 거잖아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선생님께 의지하지 않았어요.

학교에서는 물론 말하기와 듣기를 연습하지만

35명 중에 어떻게 제 아이만 봐줄 수 있겠어요. 그래서 제가 집중을 했어요.

2학년이 되니까 발표력은 부족해도 모기소리는 없어졌어요.

3학년이 되니까 활달해지고 4학년이 되니까 학급임원을 하고

중학생이 되어서는 전교회장이 되어서 정견발표도 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여의도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전에

개막선언을 하는 학생이 되었어요.


엄마학교에 있는 방석을 보면 뒷면에는 작은 꽃봉오리가 있고

앞면에는 활짝 핀 꽃이 있는데 우리 아이들이 지금 이 꽃봉오리다,

미리 지레짐작해서 서두르고 화내고 다급해서 닦달하지 마라,

엄마혼자 키우는 게 아니고 학교에서도 키워주고

주변의 삼라만상을 보면서 크는 거라고 엄마들에게 이야기를 해요.


▶ 그런 것들을 어디에서 배우셨어요?


책을 읽거나, 뭘 배우러 다니지 않아서

오히려 아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어요.

어떤 엄마가 좋은지, 어떤 아이가 좋은지,

이럴 때 아이는 무엇을 원하는지 읽혀지더라고요.

그래서 남한테 의지하지 않고 저를 믿고 의지했어요.


그리고 일을 하면서 아이를 돌보았기 때문에

메모를 항상 사용해서 아이와 소통했어요.

한 줄짜리 메모요. “우리 강아지, 오늘도 무사히 돌아왔다. 만세!”

책상 위에도 하나 더 놓아요. “벌써 공부하려고? 더 놀지~” 하면

아이가 우리 엄마 정말 세다, 이러면서 공부가 하고 싶잖아요.

공부하려는 아이보고 공부하라고 하면 하기 싫거든요.

저는 아이보고 뭔가를 하라고 하면 지겨워질 것 같았어요.

머릿속까지 들어가서 감시할 수 없으니까 믿었어요.


엄마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요. 엄마가 되는 법을 이미 배웠다고.

자랄 때 엄마가 이렇게 했을 때 참 좋았던 부분은 그대로 하면 되고

우리 엄마가 이렇게 한 건 싫었어, 하면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하면 되는 거예요.

우리 엄마는 아침에 가끔 소리를 지르셨어요.

그래서 아침에 아이들을 깨울 때는 귓속말로 했어요.

“잘 잤니? 좋은 꿈 꿨어?” 그러면 아이들도 “엄마도 잘 잤어?” 하면서

입 맞추고 눈을 뜨면 얼마나 하루가 평화롭게 시작이 되는지 몰라요.


▶ 과외는 따로 시키지 않으셨어요?


큰 아이는 고1, 고2 때 아이가 원하는 과목,

실력이 떨어진 과목으로 한 두 과목을 했었어요.

사실은 수학이 갑자기 어려워지는 것 같아서

한 번 해보라고 3년을 브리핑하고 나서야 고1 때 한 거예요.

학원을 따로 보내지 않았던 게 사람이라는 건 일정량의 배터리가 있잖아요.

밤에 학원가서 에너지를 쏟고 오면 학교 가서 자잖아요.

그래야 아이가 살죠. 학교 갈까, 학원갈까 생각해 보니 학교가 정규교육이잖아요. 낮에 깨어있는 게 좋고 아이들도 원하지 않으니까 강요는 하지 않았어요.


아이들이 어느 날 저한테 그래요.

“선생님들이 열변을 토할 만큼 예쁨 받은 비결이 뭔 줄 아세요?

수업을 열심히 들어서예요.”

학원을 안 가니까 처음 듣는 과목이라서 재미있기도 하고

밤에 잠을 자니까 생기가 있어서 수업시간에 선생님 얘기를 열심히 듣는 거예요.


▶ 학교에서 열심히 배우면 학원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젊은 엄마들이 그래요. 학교에서 안 가르치기 때문에 학원을 보낸다는 거예요.

하지만 학교에는 아직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이 계셔서

아이들이 질문하면 답해 주시고

선생님들도 열심히 듣는 아이가 있으면 가르칠 맛이 나죠.


▶ 친구관계는 어떻게 하셨어요?


대범해지려고 굉장히 노력했어요.

제가 소심해서 임신하면서부터 아이를 대범하게 키우려고요.

아무하고 노는 아이가 훌륭하고 엄마도 아무하고나 놀게 해야 하는데

특히 싸움하는 아이들과 어울리는 걸 싫어하잖아요.

저는 집에 데려와서 놀게 했어요.

그래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무리 싸움쟁이고 욕쟁이여도

잘생겼거나 인사를 잘 하거나 밥을 잘 먹거나 하는 좋은 점이 있어요.

좋은 점을 찾아서 계속 칭찬을 했더니 제가 밖에 나가면 저 찾아와서 인사를 해요.

얼굴에 웃음이 피면서 행복해했어요.


또 어떤 엄마들은 제 아이가 꼴등이랑 논다고 전화를 하더라고요.

그러면 제가 그래요. “제 아이랑 같이 놀면

그 아이가 아무래도 공부를 좀 할 수 있겠네요.

살면서 어떻게 덕만 보고 살아요. 덕을 주고 사는 날도 있어야지요.”

제 아이의 시간만 허비되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아요.

제 아이는 그 아이를 통해서 가르치는 법을 배워요.

어차피 같이 커야 하거든요. 제 집안만, 아이만 천국을 만들어도

집밖에 나가면 모든 아이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잖아요.

욕하는 아이, 싸움하는 아이를 칭찬하니까 웃어요.

제 아이 친구들도 마찬가지고요. 아이들을 보는 눈이 달라지니까

일단은 제가 편하더라고요.


진정한 육아원칙은 선택과 포기 “이걸로 충분해”


▶ 어릴 때부터 자유롭게 혼자 여행하게 하셨어요?


아기 때부터 스스로 혼자 판단할 수 있도록 했어요.

가령 전철을 탔는데 자리가 나면 앉을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게,

또 옷 입는 것도 그렇고 뭐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훈련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크니까 심사숙고할 일이 있으면 길 떠나겠다고 해요.

그러니까 고3 딸이 세계잼버리를 간다고 하죠.(웃음)

아들이 중2 때도 혼자 길을 떠난 적도 있었어요. 오래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 불안하지 않으셨어요?


탯줄을 잘 뗐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잘 갔는데 저는 조금 불안하더라고요.

어디를 갔냐 하면 강원도 영월에 가서 단종의 능도 보고

청룡포에 혼자 배타고 들어갔다가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단종의 슬픈 이야기를 듣던 관음송이 있어요.

커다란 소나무인데 자기도 동갑내기인 단종의 슬픈 이야기를

떠올려보기도 하고 그랬대요.

당시에 아이가 전국체전 육상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하고

전교회장이기도 했는데 많이 놀게 해서 체력이 좋았던 것 같아요.

공부를 계속할지 운동을 할지 고민을 하던 때라서

갔다 오겠다고 해서 다녀온 거예요.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고민이 해결된 건 아니지만

다시 밝아지고 두 가지 다 잘 병행했어요.


▶ 마지막으로 엄마들에게 한 말씀 해 주세요.


아이가 제 욕심만으로 이루어진다면 욕심을 내겠어요.

하지만 제 욕심으로는 화만 나서 최소한의 욕심만으로 만족했어요.

“이걸로 충분해” 남편과 결혼할 때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으니까

나머지는 놓아버렸어요.


처음 아기를 가졌을 때 이 아이가 발가락 열개, 손가락 열개,

건강하게만 나오면 그걸로 충분해, 됐어,

그렇게 사니까 힘들지 않고 육아가 달콤했어요.


학교에 다닐 때도 학교만 갔으면 했는데 갔어요.

그 시기에 해야 할 것을 해 낼 때 충분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제가 생각해도 선택과 포기를 잘한 것 같아요.


고3 딸이 겨울방학인 1월에 잼버리에 간다고 하더라고요.

학생신분으로 스카우트 활동을 8년을 했는데

학생으로서의 백미를 누리고 싶다고 해서

어차피 운영요원으로 일하러 가니까 다녀오라고 했어요.


이 아이가 고3에 많은 것을 누리니까 하나는 얼른 놨어요.

이 아이가 내년에 대학을 못가나보다, 재수를 하려나 보다.

그러니까 그 시간이 화가 안 나는 거예요.

재수는 하지 않고 바로 대학을 들어갔지만요.


<이상>

출처 : 빛의 길로
글쓴이 : 순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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