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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유감

by 문기정 2022. 10. 14.

80 有感
문기정

 
 

 
2022.7.12.-1943.7.12.=79
아직도 1년 남았는데 80이라니 억울하네.
 
나이 80을 산수라 한다나?
傘壽. 八 자가 다섯 개에 十 자로 마무리 했으니...
나도 이제 한국 나이로 산수에 이르렀다.
지인들이 80을 넘기고 하시는 말씀이 70대와는 달라졌다는 것이다.
눈도 어둡고 귀도 잘 안 들리고 잊음도 심하고 산에 오르기도 힘들고 음식도 맛이 없고 근육도 빠지고 지구력도 감소하고...
이런 푸념들을 예사로 듣고 넘긴 자신이 인생 선배님들의 하소연을 되씹어보게 된다.
 
 
 
엊그제만 해도 그렇다. 헬스장에 입고 가려던 셔츠를 여러 번 뒤집기 하고, 라카 열쇠를 쓸데없이 동원하고, 심지어 집에서 나올 때 지갑을 챙기지도 않았으니 선배님들의 80 타령이 실감 난다.
 
지난 6월 1일.
내가 운영하는 카페 ‘심리교육 디오라마’에 올린 글도 그런 맥락에서 연유되었다.
망각과 착각, 치매염려증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요지는 자신의 망각이나 착각을 치매라고 걱정하지 말자는 글이다. 나의 망각과 착각에 대한 치매 아님을 항변하는 글이기도 하다.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질환으로는 약 80가지 이상의 질환이 보고되고 있지만, 퇴행성 치매인 알츠하이머병, 뇌혈관성 치매, 루이체 치매(섬망, 환시 등 증상)가 주요 3대 치매이며 그 외 전두엽 치매 및 알코올성 치매 등이 주요 원인질환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이 든 분들이 명심할 사항은, 기억력이 전보다 못하다고 느낄 때 ‘나이 들면 누구에게나 생기는 정상적인 노인성 건망증’으로 여기지 말고 치매를 유발할 수 있는 위험인자가 발견되면 즉시 치료를 시작하는 게 옳다.
 
노인에게 무서운 적의 하나가 치매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오늘 80이 되는 날 우연한 착각 증상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기를...
 
이제, 오늘을 기해 80이라고 하니 내 인생의 前後左右를 단편적으로 조명하고 餘生을 소중하게 가꾸고자 한다.
 
앞모습(남에게 보여 온 내 모습-智)
 
좋은 인상은 상대방의 호감을 산다. 되도록 좋은 얼굴, 바른 행동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물론 태생적으로 그런 모습이면 좋았겠지. 부모님이 연세가 높으신데도 자식 욕심이 많으셔서 늦둥이를 보게 되신 것이다. 형님과 두 누나가 세 살 터울이었다. 3남매면 족할 것을 막내까지 두셨으니 자식 욕심이 대단한 분이신 건 두말하면 잔소리지. 애지중지 키우신 건 요새 말하면 溺愛型 육아방법이었다. 자연 버릇이 없는 아이가 된다.
 
그런데 웬일인지 학교 교육을 받으면서부터 선생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원칙에 충실한 학생이 되어가고 있었다. 거기에 사범교육을 받았으니 소위 師道가 확립되었다고 생각된다.
 

 
교사가 되어 원칙에 충실하다보니 칭송이 있는 곳에 반작용도 나타났다. 그러나 오직 그것만이 사도인 것을 고집한 게 맞다.
 
사람은 말씨가 고와야 호감이 간다. 악담보다는 덕담이, 비난보다는 응원이 낫다. 나약한 사람이라 감히 언쟁을 해보지 못했다. 언어적 공격에 방어할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러면 글이라도 써서 내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데, 솔직히 내 주장을 투철하게 하지 못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니 자연히 내면적인 글쓰기-카페나 블로그, 비망록을 작성했다. 일기장을 오랫동안 간직해 오다가 헛된 일인 것 같아 이를 버리고 25년 전부터 네이버 클라우드에 매일매일 겪은 일을 기록했다. 내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ID와 PW만 넣으면 4반세기 내 생의 여정을 조감할 수 있을 것이다.
 
 
싸움질을 못하니 주장이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정의로운 일에는 작으나마 용기는 가졌다. 주관적이기는 하나 내 의사가 바르다고 판단하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서 막힌 사람이다.
 
 
왼쪽 모습(심장이 뛰는 사념-義)
 
교육하는 길에 서서 나를 둘러보기 위해 내 방에 족자를 세웠다.
‘여기 얼굴이 밝고 맑으며 자애와 이해와 동정과 관용과 인내와 정열로써 제자의 생명을 키우며 미소를 짓는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스승이로다. ’
문장의 틀은 갖춰지지 않았지만 항상 내 앞에서 가는 길을 비춰 준 글귀였다. ‘스승’이라는 책자에서 발췌한 글을 서예부 제자가 고이 써서 기증한 족자다.

왼쪽 모습은 중도 진보의 길을 걷는 모습일지 모른다. 극단적 우파와 극단적 좌파는 경계했다. 극과 극은 투쟁하기 마련이다. 중도 진보는 무리 없이 개혁하는 길이다.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정책까지 극구 반대할 능력도 식견도 갖지 못했기 때문일까.
 
사고는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 비뚤어진 인생관, 세계관을 나는 배격한다. 家訓 ‘安分以養福’은 내 인생관의 반영이다.
 
오른쪽 모습(인간관계-仁)
 
오른쪽이라면 우파?
나의 오른쪽은 仁의 세계를 말한다. 인간관계가 주된 모습일 것이다.
나는 혈연을 무시하지 않는다. 아버님의 친족 사랑은 우리 가문의 귀감이자 가풍이다. 친족을 모아 마을을 이루신 아버지. 우리는 만의 하나도 따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잃어버린 派祖의 산소를 복원하고 친족이 모여 조상을 기리는 행사는 내 주관에 따랐다.
 
학연이라는 인연은 영원하다. 초, 중, 고, 대학의 인연으로 관계를 맺고 그 끈을 단단히 매어온 지난날이 자랑스럽다.
 
고향에서 학교 재학 9년, 교직 생활 8년이니 향우, 교우의 도움이 컸다. 지금도 굳게 만난다.

인간관계를 얘기할 때 흔히 7 ㄲ을 가지라는 말을 듣는다. 즉 꿈(자신에 대한 포부), 끈(사람들과 어떤 관계), 끼(자신감이나 자신의 스킬), 꾀(창의력과 기발함), 꼴(자신의 이미지), 깡(자신감, 열정), 꾼(무엇을 즐길 수 있는가)
나는 7 ㄲ 모두에 자신이 없지만, 하나하나 억지로 뜯어 붙이면 작은 모습들이 보일는지 모르겠다.
 
뒷모습(제자, 후손에게 비친 내 모습-德) 
 
1만 명에 달하는 나의 제자들, 친족들, 친구들, 지인들이 보는 나의 뒷모습이 5점 중 평균 3점은 되었어야 하는데...
그건 모르겠다.

 
오늘 80 有感은 외현적인 나의 모습이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는 부모님에게 전수된 유교적인 생활에 젖어 있었고, 오직 孝悌忠信 사고로 꽉 찼던 시절에는 思考가 내현적으로 경직되었었다.
장기간 교직 생활을 영위하면서 평생교육을 통하여 스스로 유연함을 느꼈으며 아내도 이를 반겼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하다. 미숙하다.
여생은 이를 더 채우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
따라서 다음 과제는 침체되었을 내면의 나를 업그레이드 하는 일이다.
 
(2022. 7. 12.)